『전쟁과 평화』가 나에게 남겨 준 정신적 유산은 계란 속에 잠재해 있는 문학예술이라고 할까.
이후 광해군 때 일본에 파견된 이경직은 포로로 잡혀간 조선 도공들을 데려오려 했으나 그중 상당수가 이미 일본이 자리를 잡았기에 귀환을 거부했다고 『부상록』에 썼다.사쓰마의 강력한 다이묘였던 나베시마는 조선의 도공들을 자신의 고향인 규슈 섬으로 끌고 갔는데.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더 중앙 플러스관점의 관점 +채상병 대치 반복된다오프로드 정치의 시작정말 오랜만이다.그는 조선 도자기 역사도 제법 알고 있었다.한데 우리는 몇몇 조선 도공의 이름을 알고 있다.
조선 도공들을 확보한 일본은 이들 덕분에 중국을 위협하는 자기 수출국으로 변모했고.이제 유교와 결부된 조선백자를 볼 때 그 예술성에 감탄하면서도 그 그림자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이 조선을 끔찍하게 파괴한 전쟁이 끝났을 때.
상공업의 발달을 경계했다.조선인은 한때 이웃 나라 국민보다 훨씬 앞섰다고 적시했다.
[사진 한국도예협회] 그 여파는 오스트리아 여행작가 헤세-바르텍(1854~1918)의 기록에도 나타난다.17세기 말까지도 일본인들이 대량으로 구입했다.
중국과의 조공무역에 의존하던 조선은 백자를 서역에 수출해 국부를 쌓을 여력도.상공업의 발달을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