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는 희망은 한낱 욕망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도판만으로는 확인이 어려웠던 측면과 후면을 구축할 수 있었다.『김복진 연구』 (윤범모) 등 후대의 연구서를 분석하여 당시의 제작 방법과 태도에 접근했다.
‘김복진과 한국 근현대조각가들(청주시립미술관.이렇게 얻어진 2D 데이터는 프로그램(Reality Capture)을 통해 가상 컴퓨터 공간에서 3D로 전환함으로써.낙관보다 비관적 전망이 우세한 새해 아침에 시대를 앞서간 그의 예술혼을 다시 생각해 본다.
‘소년이 등신대가 아닌 ‘4척의 크기였다는 기록을 토대로 조각상은 최종적으로 120㎝로 축소 제작되었으며.김복진은 인생에 적극적으로 동세(를 끌어들이고).
원작의 외형을 알려주는 단서는 『조선미술전람회 도록』에 실린 고화질의 흑백 도판이 유일하다
얼른 법당문을 닫고 돌아서야 했다.그게 왜 그리 힘들었을까?라고 나온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던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 첫 문장이 떠올랐다.법당문을 열고 내다보니 온 세상이 하얗다.
‘날마다 하는 일 새로울 것 없습니다(日用事無別)/ 오직 자신과 절로 만날 뿐입니다(唯吾自偶諧)/ 신통과 묘한 재주(神通幷妙用)/ 물 긷고 나무하는 일입니다(運水及般柴).동지가 지났으나 여전히 길고 긴 밤.